방짜유기역사  | 장인의 손길로 살아 숨쉬는 한국의 자랑 방짜 유기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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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조사보고 제148호 20항에 기록된 것을 보면 동양에 전해진 유기는 고대 오리엔트에서 만들어진 합금과 유사하고
기원전 5세기경에 페르시아에서 사용한 재료와 비슷하며 기원전 5세기 다리우스 대왕은 금과 색상이 유사하지만 이상한 냄새가 나는 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놋쇠로 만든 것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페르시아에서 놋쇠가 대량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은 A.D 6세기경으로 그 기술이 인도에
전해지고 그로부터 약 2세기 가량 뒤에 중국에 들어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이 설이 옳다면 중국에서는 A.D 8세기경에 비로서 놋쇠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페르시아나 인도에서 전해진 기술에 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서(唐書) 여복지(與服志)에는 A.D 674년에 제정된 관리의 복식(服飾)을 설명하는 조항에서 6, 7품은 은대(銀帶)를 띠고, 8, 9 품은
유석대(鍮石帶)를 띠며 서인(庶人)은 동철대(銅鐵帶)를 띤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석(鍮石) 즉, 놋쇠는 은과 동의 중간으로 여겨지는
금속이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이렇게 놋쇠를 금속장식 용품으로 쓸 때 은과 구리의 중간으로 취급한 예는 삼국사기 에서도 볼 수 있고, 아마도 그
당시에 놋쇠는 금, 은, 다음으로 귀한 금속으로 여겼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유기 역사의 시원(始原)은 멀리 청동기 시대로 올라가 청동기 주조에서 부터 그 시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왜내하면 유기는 동(銅)이 주 원료(原料)이기 때문이며 청동기도 넓은 의미에서 유기의 일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인 학자들이 한국엔 청동기 시대가 없다고 하였으나 해방 후 남북한에서 많은 청동기 유물이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의 설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청동기 시대는 순동 시대와 동석 시대로 나뉘는데 순동시대란 자연동 만으로 유기를 제작한 시대이고, 동석시대란 주석을 섞어서 순동(純銅) 제품을
만든 시대보다 더 많이 동석(銅錫) 제품을 제작한 시대를 통틀어 청동기 시대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사 발표된 한국의 청동의 주조는 B.C 6 - 7 세기를 상한(上限)으로 보고, 청동기 문화가 발달한 시기를 B.C 3세기 경으로
보고 있으며, 청동기 문화가 끝난 시기를 대개 A.D 6세기경으로 보고 있어,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기간(期間)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속문화는 대륙의 한문화(漢文化)의 유입기인 B.C 108년에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되면서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가 시작되었으며,
아울러 연금(鍊金)술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3세기경에는 한반도에서 금과 은을 귀히 여겼으며 진한(辰韓)에 서는 철(鐵)을 생산하여 이웃 부족과 일본에 까지 수출하였다.


4세기경 삼국시대에는 금(金), 은(銀), 동(銅), 철(鐵)이 산출(産出) 되었는데 특히, 백제(百濟)는 일본에 제련(製鍊) 및 세공기술(細工技術)을 전해
주었음이 일본 서기(書記)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때부터 놋쇠에 주석(朱錫)을 합금하여 사용 되었다. 그러므로 4세기경에야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금빛의 놋쇠가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금속공예 기술은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유적지에서 출토된 화병 및 각종 병과 놋대야, 놋그릇, 제기, 불기, 징, 꽹과리 등이 있어 당시의 주조기술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직접 유기 제작을 관장해 전국적으로 그 조직망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세조때 최항 등이 기술하여 만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자세히 설명 되어 있다. 어느 때부터 시작 되었는지는 정확한 시기는 문헌이 없어 알 수 없으나 경남의 함양군 안의(安義), 서상(西上), 경북 김천(金泉) 지방에서 징과 꽹과리 등의 민속전통악기를 주로 생산 하였다고 전해지며 전남의 운봉(雲峰) 유기가 유명하였다고 하나, 그 유적지인 운봉 현지에는 대부분 전답이 되어 있거나 집터로 변해 있어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고 다만, 물돌(용해시 사용하는 돌로된 기구)만 2개 정도 발견돼, 유기 제작지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경기도 안성(安城)의 유기는 방짜유기 생산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며 그곳은 주물유기로 유명한데, 언제부터 유명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조선조 중엽 정도로 보고 있다.

방짜유기의 제작지로는 평북 정주군 마산면 납청지역으로 알려져 있을 뿐 그 시원이나 지역이 알려진 바 없고, 보통 납청지역 이었을 것으로 판단 되고 있다. 평양, 사리원, 삭주 등에 방짜유기 공장이 있었고 이곳 공장의 제작 기술자들은 모두 납청지역 출신 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방짜유기 제작기법은 오랜 세월 납청지역에서 발전 계승 시켜온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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